"Angkor"는 산스크리트어로 앙궁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파생된 단어로 '도시국가'를 지칭하는 말이며 "Thom"은 형용사 '커다란' 뜻으로서 앙코르 톰은 곧 '대도시 국가'의 의미가 된다. 앙코르 톰에는 바이욘 사원을 축으로 각 방향으로 Gate가 하나씩 있으며 왕궁 앞 광장에서 동쪽을 향해 'Victory Gate'가 하나 더 있다. 정문은 남문이며 동문은 '사자(死者)의 문'으로 불리웠고 승리의 문은 군사적 행동의 출발점이며 영토확장의 의미가 있는 문이다. 성문은 높이가 20m이며 꼭대기에는 3m의 사면불(四面佛)로 조각된 관음보살상이 있고 성문으로 들어가는 다리 난간에는 좌우로 54개의 신상이 우유의 바다 젓는 장면을 상징하고 있다. 각변이 높이 8m의 성벽으로 3km인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성외곽은 폭100m의 해자로 둘러쌓여 있었다.
앙코르 톰 이전의 시대는 힌두교가 국교였었지만 12세기 참파군의 침공과 점령으로 종교적, 정치적 기반이 상실되었고 정통왕위 계승자가 아닌 자야바르만 7세는 국왕의 신격화된 사상이 무너지면서 불교를 국교로 바꾸면서 신격화된 국왕에서 관세음보살상과 같은 '자비로운 군주'상을 내세워 국왕으로서의 권위를 살리며 사회를 쇄신하게 되고 침입에 대비하여 앙코르 톰을 건축하게 된다.
불교를 국교로 바꾸면서 이때부터 건축되는 건축물들은 불교사상에 의해 건축되는데 바이욘과 타프롬, 5개의 문에 있는 4면 관음보살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앙코르 톰에 거주했었던 원나라 사신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묘사가 되어 있다.
"왕궁의 중앙에는 황금탑 바욘이 우뚝 섰고, 주변은 12개가 넘는 작은 탑들과 수백 개의 돌로 만든 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두 마리의 황금사자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황금 다리가 동쪽으로 놓여 있고, 다른 쪽에는 여덟 개의 황금 부처가 돌로 된 방을 따라 늘어섰다. 청동으로 된 황금 탑(바푸온)의 북쪽에는 바욘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는, 밑에 10개도 넘는 방이 있는 탑(피미아나까스)이 있다. 이 탑의 북쪽 1/4리 쯤에 왕이 기거하는 왕궁이 있다. 왕실 위에는 또 다른 황금탑이 있으며 이 탑들을 보고 외국에서 온 상인들마다 참 부유하고도 장엄한 앙코르제국이라며 감탄하였다."
그당시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한 도시의 흔적은 대부분이 목조 건물이어서 지금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남아있는 유적만으로도 그당시의 위상을 짐작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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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시기(왕) |
종교 |
관광소요시간 |
바이욘 신전 |
12세기말
자야바르만7세 |
불교건축 |
2시간 |
바푸온 신전 |
11세기 중반 |
힌두교건축 |
보수공사중. 외부 둘러보기에 30분 정도 |
피미아나까스 |
10~11세기초 |
힌두교건축 |
30분 |
왕궁터 |
자야바르만 7세 |
불교건축 |
20분 |
쁘레아 빨리라이 |
12세기초~13세기초 |
불교건축 |
20분 |
텝 쁘라남 |
9세기 |
불교건축 |
10분 |
코끼리 테라스 |
자야바르만 7세 |
불교건축 |
30분 |
문둥왕 테라스 |
자야바르만 7세 |
불교건축 |
20분 |
쁘라삿 수오르 쁘랏 |
자야바르만 7세 |
불교건축 |
20분 |
남북 끌리앙 |
북쪽(10세기초)
남쪽 (11세기초) |
힌두교건축 |
40분(Vihear Prampil Loveng포함) |
승리의 문 |
자야바르만 7세 |
불교건축 |
타 유적지 관광을 위해 통과할 때 |
남문 |
자야바르만 7세 |
불교건축 |
통과할 때 관광, 사진 촬영등 15분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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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kor Thom의 주출입문인 South Gate
바로 그 주위에 Baksei Chamkrong, Prasat Bei, Thma Bay Kaek 등이 있다.
유해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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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테라스의 중앙의 맞은편에 나 있는 곧은 길을 따라 나가면 4개문 이외의 문인 '승리의 문'이 나온다.
승리의 문은 700km 떨어져있는 참파로 향하는 출발점인데 자야바르만 7세의 영토확장과 과거 앙코르의 함락데 대한 복수의 의미가 깔려 있는 곳이다.
Victory Gate
유해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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