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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

2006년 캄보디아-13.앙코르 유적 지도 및 건축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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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유적지 건축 연대

 

 

9 세기

롤루오스 유적군 (Roluos Group)
쁘리아 꼬 (Preah Ko)
바꽁(Bakong)
롤레이(Lolei)


878
881
893

인드라바르만 1

10 세기

프놈 바켕 (Phnom Bakeng)

?

야소바르반 1
 Yasovarman I

프놈 끄롬 (Phnom Krom)

?

쁘라삿 끄라반 (Prasat Kravan)

921

박세이 참끄롱 (Baksei Cham Krong)

947

라젠드라바르만 2

Rajendravarman II

동 메본과 동 바라이 (East Mebon & East Baray)

952

쁘레 룹 (Pre Rup)

961

반띠아이 쓰레이 (Banteay Srei)

967

끌리앙 (Kleang)

967

11 세기

따 께우 (Ta Keo)

1000-1025

수리야바르만 1
Suryavarman I

피미아나까스 (Phimeanakas)

바푸온 (Baphuon)

1050-1066

우다야딧야바르만 2

Udayadityavarman II

서 바라이 (West Baray)

12~13 세기

앙코르 왓 (Angkor Wat)

1113-1150

수리야바르만 2
Suryavarman II

차우 싸이 떼보다 (Chau Say Tevoda)

톰마논 (Thommanon)

반띠아이 쌈레 (Banteay Samre)

1150-1175

따 쁘롬 (Ta Prhom)

1186-     .

자야바르만 7
Jayavarman VII

반띠아이 끄데이 (Bantey Kdei)

쁘리아 칸 (Preah Khan)

1190-1210

따 쏨 (Ta Som)

쓰라 쓰랑 (Srah Sraeng)

앙코르 톰 (Angkor Thom)

바욘 (Bayon)

코끼리 테라스 (Elephant Terrace)

문둥이왕 테라스 (Leper King's Terrace)

끄롤 꼬 (Krol Ko)

쁘리아 빨리라이 (Preah Palilay)

니악 뽀안 (Neak Pean)


건축양식과 건축에 쓰인 재료들

앙코르 건축에는 나무와 라테라이트, 벽돌, 사암 등이 주로 쓰였다.
나무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나무로 건물을 지어 썼을 가능성이 있으며, 건물 벽에 난 구멍을 통하여 그리고, 앙코르 톰의 바욘에 있는 벽화를 통하여 당시의 가옥구조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라테라이트는 건기의 열대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적갈색의 흙으로, 건물의 기초를 다지는데 주로 이용되었다.
높은 건물들의 기단들은 모두 라테라이트로 기초를 잡은 것들이었다. 라테라이트는 땅 속에서 수분을 머금고 있을 때는 부드러운 성질을 띠지만, 한번 공기 중에 노출이 되면 벽돌보다 단단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번 굳어버리면 단단하며, 떨어질때 덩어리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조각하기에는 좋지 않지만, 기초를 다지는데는 좋은 재료라고 한다.


앙코르 건축의 초기(10세기 전)에는 주로 벽돌로 탑을 지었는데, 이렇게 벽돌로 지은 탑 양식을 '전탑'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롤레이(Lolei)인데, 중기에 와서도 중요한 탑들을 제외한 건물의 외곽에 있는 탑들은 전탑양식을 띠고 있는 것이 많다.
쁘레 룹에 가면 중앙의 탑들은 사암으로 되어 있지만, 외곽에 있는 탑들은 전탑형식인 것을 볼 수 있다.


10세기가 지나면서 건물들의 중요한 부분들은 대부분 사암으로 쌓아올렸는데, 사암은 한국의 주 건축재료인 화강암보다는 훨씬 무르며, 그리스 신전들의 주 건축재료인 석회석보다는 훨씬 단단하다.
앙코르 유적을 축조한 사암들은 대부분 앙코르 유적지에서 40km 북쪽으로 떨어진 프놈 꿀렌에서 건기에는 소나 코끼리, 우기에는 배를 이용하여 옮겨왔다고 한다.

사원의 천정에는 타일을 붙였는데, 지금은 복원된 흔적만 앙코르 왓에 조금 남아있다. 대부분 유적의 천정이 텅 빈 것을 볼 수 있는데, 원래 지붕의 안쪽 경사면이 시작되는 위치에 타일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용 재료로는 석고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석고는 석회석과 모래, 설탕원액, 흰개미 집의 진흙, 타마린(콩의 일종) 등을 잘 배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앙코르 건축의 특징

중앙탑 : 중앙탑은 크메르 사원의 포인트이며 항상 동쪽을 바라보게 지어졌다.
벽돌이나 사암으로 정방형으로 만들어 벽의 네 면이 네 방위을 보게 지었는데, 동쪽에만 출입문을 두고, 나머지는 벽에 부조를 한 벽으로 막았다.
아래가 4각으로 올라가지만 천정이 있는 높이에서 탑 정상까지는 원추형을 만들어서 연꽃을 봉오리를 형상화했다.


- 초기단계 : 1개의 사원 탑만 지었으나 사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복잡하게 고조를 만들어 갔으며 보통 3-6개의 층으로 벽돌탑을 쌓았다.
중앙탑은 조금 높게 쌓았고, 탑 꼭대기의 정교한 조각은 석고로 떠서 조각하였다. 롤루오스 사원 군들이 대표적인 초기 사원의 예다.

- 중간단계 : 5개의 탑 구조로 발전하였다. 각 탑들도 기단을 만들어 계단으로 올라가게 한 다음 그 위에 탑을 세웠는데, 이 탑들은 힌두 전설에 나오는 수미산(메루산)의 5개 봉우리를 상징하는 것이며, 오르는 계단 입구는 수문장(코끼리, 사자 등)으로 장식하고 테라스를 살려 조각을 많이 하였다.
프놈바켕, 쁘리아 룹, 동쪽 메본 등이 해당된다.

- 후기 : 건축 기술이 늘면서 입구 탑의 구조도 복잡해졌으며, 사원 내의 넓이가 넓어지면서 중앙 신전의 위용은 줄어든 대신 부속탑들이 많아졌다. 주변 사원과 탑을 연결하는 긴 회랑은 나무 지붕을 덮었고, 벽에는 부조를 하여 벽화로 꾸몄다.


입구 탑에 큰 얼굴을 조각한 것은 크메르 만의 독특한 디자인인데 12-13세기 초의 앙코르 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2세기 불교의 탑은 중앙 사원과 주변의 회랑, 도서관 등 부속 건물이 같은 층에 있는데, 반띠아이 끄데이, 쁘리아 칸, 따 쁘롬이 대표적인 예 이다.


도서관 : 도서관은 주로 마주보는 사각형 건물로 크메르 만의 혁신적인 구조인데, 특이하게 서쪽으로 문이 나 있다.
도서관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의 도서관처럼 책을 보관하던 곳은 아니다. 이 건물의 안에서 힌두 전설에 나오는 우주와 태양계 9혹성의 그림이 발견되어 천문 공부를 한 것으로 추측하였고, 이것이 무엇인가 지적인 활동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현대의 학자들이 '도서관'이라 이름지었을 뿐이다.
제사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신성한 물건들이 이곳에 보관된 흔적도 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이 건물의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크메르 건축에 적용된 우주론

크메르 사원의 건축구조, 배열, 장식과 조각, 미술 등은 주로 신화와 종교적인 내용이 그 모델이 되어 왔다.
대부분 힌두교의 신화와 우주론이 벽화, 건축구조 등에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중앙탑이 있는 중앙 성소와 사제들이 살았던 장소가 중앙성소를 둘러싸고 있고, 또 이곳을 일반인들이 살았던 곳이 둘러싸고 있는 형식의 3단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상계와 지옥계 및 천상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앙에서도 정 중앙에 있는 탑을 메루산(수미산)이라고 하는데 메루는 우주의 중앙을 의미하며,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메루에서 흘러나오는 4대강을 끼고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원래 메루란 히말라야 산을 의미하고, 메루산 주변을 6-7개의 산맥이 둘러치고 있는데 이것은 지식을 뜻하며, 그 사이에는 바다가 있어 이를 구분한다고 믿었다.

캄보디아인들은 높은 산은 하늘과 가깝다고 믿었고, 신은 메루산의 정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메루산으로 형상화되는 중앙 성소의 높은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매우 가파르며 계단 폭이 좁은데, 이는 그 길은 인간이 이용하는 것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라 신이 이용하도록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인들은 또 동쪽은 생명과 창조, 새로운 시작, 남자의 용감성, 길조를 뜻하는 것이으로 생각했으며, 서쪽은 죽음, 끝, 여성과 음란 및 불길의 징조로 여겼다.
북쪽은 히말라야를 향해 있는 곳으로 위대한 힘과 길조를 의미했고, 남쪽은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땅은 자연과 가깝다고 보고 앙코르 왓의 남쪽 회랑 벽에는 32개의 지옥과 각 죄에 따른 처벌을 묘사한 부조가 있으며, 지옥은 단계적으로 점점 더 무서워진다고 생각했다.

조각품

1936년 한 마을 사람의 꿈에 부처가 나타나 일러준 대로 가 보았더니 서 바라이에서 119cm의 청동으로 된 몸통 조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몸통을 기본으로 원형의 전체크기를 계산해 보니 전체 길이 약 6m의 청동조각인 것으로 밝혀졌다.
머리와 몸 일부만 발견되었으나 팔 부분이 4개인 것으로 보아 힌두의 비슈누 신상으로 추정하였다.
이것은 아시아에서 발견된 가장 큰 청동상이다. 석조는 인도의 굽타(Gupta) 예술과 비슷하다.
남성상은 근육과 힘찬 느낌을 주고 있고, 여성상은 미적 느낌과 섬세함을 강조하고 있다.

연대별 특징을 보면 8-9세기의 조각들은 몸 부분이 정확히 표현되고 조각이 깊다.
전체적 배열은 수직과 수평으로 많이 하였고, 남자의 옷은 왼쪽 허벅지에서 주름잡아 앞에서 닻모양으로 접어 멋을 내었다.
10-11세기의 조각들은 매우 부드러운 곡선이 두드러지며, 조각에 통일성이 있다. 머리 장식이나 옷 주름은 적어졌지만, 대신 옷의 끝이 얇게 조각되었다.

12세기에는 청동조각이 많으며, 12세기 이후에는 나가(머리가 7개 달린 뱀)의 부채꼴 머리, 악마와 신의 큰 머리, 탑에 거대한 머리의 조각 등이 특징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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